
몇 년 전 사우디아라비아가 관광 산업을 키우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를 시작했을 때, 저는 그저 '사막 나라가 관광을 한다고?' 정도의 가벼운 반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소한 뉴스 하나가 UAE와의 포스트 오일 시대 주도권 다툼이라는 거대한 그림과 연결되어 있었다는 걸 이번에야 제대로 알았습니다. UAE가 OPEC 탈퇴를 공식 선언하면서, 중동의 에너지 질서와 지정학 판도가 동시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OPEC 생산 쿼터가 쌓아온 UAE의 불만
OPEC(석유수출국기구)은 1960년에 설립된 산유국 간의 카르텔입니다. 카르텔이란 여러 생산자가 담합하여 가격이나 생산량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구조를 의미합니다. UAE의 전신인 아부다비 에미리트가 1967년에 가입한 뒤, 1971년 UAE 연방 출범 이후에도 회원국 자격을 유지해 왔으니 반세기가 넘은 관계입니다.
그런데 UAE가 조용히 분을 삭여 온 지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생산 쿼터 문제입니다. UAE는 수년간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원유 생산 인프라를 확충했고, 현재 하루 400만 배럴 이상 생산이 가능합니다. 내년까지는 500만 배럴 돌파도 가능하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그런데 OPEC이 UAE에 배정한 쿼터는 하루 약 320만 배럴. 최대 180만 배럴 이상을 그냥 땅속에 묻어둬야 하는 셈입니다.
이 불만에 기름을 부은 건 2016년 출범한 OPEC+(오펙 플러스)의 운영 방식이었습니다. OPEC+란 기존 OPEC 회원국에 러시아 등 비회원 산유국까지 합류시킨 확대 공조 체제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셰일 혁명으로 급부상한 미국 산유량에 맞서기 위해 덩치를 키운 연합체입니다. 그러나 이 체제 안에서도 실질적인 의사결정 주도권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쥐고 있었고, UAE의 목소리는 번번이 묻혔습니다.
IMF 추정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가 재정 균형을 맞추려면 배럴당 70~80달러 수준의 유가가 필요합니다(출처: IMF). 사우디는 이 수준을 사수하려 하지만, 이미 경제 다각화를 상당 부분 완성한 UAE 입장에서는 저유가에 덜 취약하고 오히려 더 많이 팔 유인이 큽니다. 두 나라의 이해관계가 구조적으로 엇갈릴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UAE가 서두르는 배경에는 원유 수요 피크(peak demand)라는 시한이 걸려 있습니다. 피크 디맨드란 전체 원유 수요가 역사적 정점에 도달한 뒤 점차 감소세로 전환되는 시점을 의미합니다. 블룸버그 등 주요 에너지 전문 매체들은 이 시점을 2030년대 초반으로 전망합니다. UAE의 계산은 단순합니다. '지금 최대한 뽑아서 팔고, 그 현금으로 미래 먹거리에 투자하자.' 이 타임라인에서 사우디가 주도하는 속도에 맞춰 움직이는 건 UAE에게 기회의 창을 스스로 닫는 행위와 다름없었습니다.
사우디와의 균열, 그리고 에너지 패권의 재편
UAE와 사우디의 갈등은 단순한 쿼터 싸움이 아닙니다. 저는 이 부분을 파고들수록 정치는 정말 야생이라는 말이 실감났습니다. 둘은 무슬림 형제단 견제, 카타르 봉쇄, 예멘 후티 반군 대응에서 한 팀처럼 움직였던 사이입니다. 그런데 예멘 내전에서 균열이 시작됩니다. 사우디는 남쪽 국경 안보를 위해 예멘 중앙정부를 지원했고, UAE는 홍해와 바벨만데브 해협이라는 해상 교통로 확보를 위해 남부 분리주의 세력인 STC(남부과도위원회)를 지원했습니다. 같은 전장, 다른 목표였던 셈입니다.
더 본질적인 충돌은 포스트 오일 시대의 경제 주도권 다툼에 있습니다. UAE는 두바이를 중심으로 금융, 물류, 관광, 첨단 기술 허브를 이미 구축했습니다. 그런데 사우디의 빈 살만 왕세자가 추진하는 비전 2030이 사실상 같은 목표를 향하고 있습니다. 제가 몇 년 전에 봤던 그 '사우디 관광 개발' 뉴스가 바로 이 비전 2030의 일환이었습니다. 사우디는 RHQ(지역 헤드쿼터) 정책까지 시행했는데, 이는 외국 기업이 사우디에 지역 본부를 두지 않으면 사우디 정부 프로젝트 수주를 차단하는 조치입니다. UAE가 선점해온 외국 기업 허브 기능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입니다.
외교 행보도 묘하게 갈라집니다. UAE는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s)을 통해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했습니다. 아브라함 협정이란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사이의 외교 정상화 합의를 의미하며, 미국 주도로 2020년 체결됐습니다. 반면 사우디는 중국의 중재로 이란과 관계 정상화에 나서는 다소 다른 방향을 택했습니다. 이번 OPEC 탈퇴 선언의 타이밍도 의미심장합니다. 걸프 정상들이 사우디 제다에 모여 안보를 논의하던 그 시점에 발표가 나왔고, UAE의 빈 자이드 대통령은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적어도 'UAE는 더 이상 사우디의 하위 파트너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로 읽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번 결정이 에너지 시장에 미칠 영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단기 유가 영향은 제한적: 현재 호르무즈 해협이 막혀 있어 증산이 즉시 시장에 풀리기 어렵습니다.
- 장기 유가 하방 압력: UAE가 쿼터 제한 없이 생산을 늘릴 경우, 장기적으로 국제 유가에 하락 압력이 가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 OPEC 카르텔 약화: 규모 있는 회원국의 이탈은 OPEC의 집단 가격 통제력을 구조적으로 약화시킵니다.
- 미국 에너지 패권 강화: 셰일 산유국인 미국 입장에서 OPEC의 감산 압력이 줄어드는 것은 유리한 환경입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글로벌 원유 수요 전망과 에너지 전환 속도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UAE의 증산 전략이 중장기 시장 균형에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분석합니다(출처: IEA). 저는 UAE가 체급 대비 이례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가 결국 의사결정의 속도와 국제 정세를 읽는 눈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파키스탄이 수조 원의 채무 상환 압박에 나라 전체가 흔들리는 상황과 비교하면, 경제 다각화를 일찌감치 완성해 놓은 UAE의 포지션이 얼마나 유리한지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UAE와 사우디 양국에 무기를 수출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이 지각 변동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동 내 세력 재편이 방산 수출 환경과 에너지 수급 전략 모두에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제 정치에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말이 이번 사태만큼 선명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습니다. 평화가 오래 이어져 온 만큼, 이제 그 균열이 더 크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또는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