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3번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지지 않은 부대가 있습니다. 그것도 한국과 아무런 연고조차 없던 머나먼 아프리카 나라에서 온 군인들이었습니다. 저도 춘천에서 에티오피아 참전기념관 앞을 그냥 지나쳤던 사람 중 하나였는데, 이 사실을 알고 나서는 다시 그 앞을 그냥 지나칠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6.25 전쟁 - 일요일 새벽 4시, 북한의 기습
군대를 다녀온 분들이라면 불침번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아실 겁니다. 저도 현역 시절에 새벽 근무가 정말 싫었습니다. 방금까지 달콤하게 자다가 일어나야 한다는 그 고통은 경험해 본 사람만 압니다. 그런데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은 바로 그 시간을 택해 대한민국을 침공했습니다.
이건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북한의 남침 계획인 작전명 '폭풍'은 38도선 전역에 걸쳐 동시에 기습하도록 설계된 치밀한 군사 작전이었습니다. 여기서 38도선이란 1945년 광복 이후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면서 설정한 군사분계선을 말합니다. 이 침략 전쟁은 김일성이 기획하고, 소련의 스탈린이 승인하고, 중국의 마오쩌둥이 지원하는 구도로 실행에 옮겨졌습니다.
북한군은 소련에서 공급받은 T-34 전차를 앞세워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왔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전차가 단 한 대도 없었습니다. 전쟁 발발 3일 만에 수도 서울이 함락됐고, 전선은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려 내려왔습니다. 여기서 낙동강 방어선이란 1950년 8월, 국군과 유엔군이 경상도 일대를 마지막 보루로 삼아 구축한 최후의 방어 진지를 의미합니다. 저의 할머니께서도 6.25를 몸소 겪으셨고, 평생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를 안고 사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게 얼마나 공포였을까'를 머릿속으로만 상상했었는데, 이 역사를 다시 찾아보니 그 공포의 실체가 훨씬 구체적으로 느껴집니다.
에티오피아가 한국에 군대를 보낸 이유
6.25 전쟁에 지상군 전투 병력을 파병한 국가는 총 16개국입니다. 미국이 30만 명 이상의 병력으로 유엔군의 주축을 맡았고, 영국과 영연방 국가들, 튀르키예가 여단급 이상의 부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 중 상당수의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동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입니다.
에티오피아가 참전한 이유는 단순한 정치적 계산이 아니었습니다. 1936년 에티오피아는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정권에게 침략당했습니다. 당시 황제였던 하일레 셀라시에는 국제 사회에 도움을 호소했지만, UN의 전신인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은 실질적인 힘이 없는 기구였고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국제연맹이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평화를 목적으로 1920년 창설된 기구이지만, 강제력이 없어 침략 행위를 막는 데 사실상 무력했습니다. 그 쓰라린 경험을 가슴에 새긴 황제는, 2차 대전 이후 UN이 창설되자 이번엔 다르게 행동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침략을 받고도 국제 사회의 외면을 받았던 에티오피아가, 똑같이 침략당하고 스스로 지킬 힘이 부족한 대한민국을 보면서 과거의 자신을 떠올렸던 것입니다. 제가 이 부분을 처음 알았을 때 솔직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아무 인연도 없는 나라를 위해, 자국의 군대를 보내는 결정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강뉴부대의 253전 253승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황실 근위대(Imperial Bodyguard)에서 최정예 병사들을 선발했습니다. 황실 근위대란 황제의 직속 부대로, 국가에서 가장 엄격한 훈련을 거친 정예 전투 병력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구성된 약 1,200명 규모의 부대에 '강뉴(Kagnew)'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강뉴는 암하라어로 '초전박살', 즉 적을 첫 번째 전투에서 완전히 제압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강뉴부대가 참전 기간 동안 기록한 전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 참전 전투 횟수: 253회
- 전투 승률: 253전 253승 (단 한 번도 패배 없음)
- 전사자: 122명
- 부상자: 536명
- 포로 피해: 0명 (단 한 명도 포로로 잡히지 않음)
이 숫자가 믿기지 않으셨다면, 저도 처음에 그랬습니다. 253번을 싸워서 한 번도 지지 않은 부대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게 어떻게 가능한가 싶었습니다. 에티오피아는 해발 1,500m 이상의 고원 지대이고, 강뉴부대원들은 험준한 산악 지형에서 몸을 단련한 병사들이었습니다. 이 체력과 고지전 경험이 강원도 화천, 철원, 연천 등의 산악 지형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1951년 8월 강원도 화천의 적근산에서 첫 전투를 치른 강뉴부대는 중공군을 상대로 706 고지와 602 고지를 탈환하며 부대원 전원이 미국 은성무공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1952년에는 평강·김화·철원으로 이어지는 철의 삼각지대 전투에 투입되어 중공군 45사단의 공세를 막아냈고, 대대 단위의 미국 감사 서한을 받았습니다. 1953년 5월 경기도 연천의 요크-엉클고지 전투에서는 통신이 끊기고 사방이 포위된 상황에서도 끝까지 진지를 지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부대 표창까지 받았습니다.
한국전쟁 참전국 현황에 따르면 전투 병력을 파병한 16개국 중 에티오피아는 유일하게 전 전투에서 무패 기록을 남긴 국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출처: 국가보훈부).
춘천 에티오피아 참전기념관, 그냥 지나치지 마세요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 27일 이후에도 강뉴부대는 바로 귀국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4년간 매년 새로운 부대를 파견하여 비무장지대(DMZ) 순찰 임무를 계속 수행했습니다. 여기서 비무장지대란 정전협정에 따라 남북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각각 2km씩 설정된 완충 구역을 의미합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 낯선 땅을 지키며 임무를 다한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장병들이 자신의 월급을 모아 경기도 동두천에 '보화원'이라는 고아원을 세웠다는 사실입니다. 전쟁고아들을 직접 돌본 것입니다. 제가 이 부분을 접했을 때는 정말 할 말이 없었습니다. 자기 나라 전쟁도 아닌데, 자기 급여를 털어 고아원을 지었다는 것이 그냥 숫자나 팩트가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로 느껴졌습니다.
1968년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직접 대한민국을 방문하여 박정희 대통령과 회동을 가졌고, 춘천에 에티오피아 참전기념비가 건립되었습니다. 이후 2006년에는 참전기념관도 문을 열었습니다. 기념관 바로 옆에는 '이디오피아집'이라는 카페가 있는데, 황제의 방한 당시 양국 문화 교류를 위한 공간으로 제안하여 자리를 지정한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에티오피아 스페셜티 원두커피 카페로 알려져 있습니다.
춘천 여행에서의 주요 에티오피아 관련 방문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에티오피아 참전기념비 (1968년 건립, 춘천 소재)
- 에티오피아 6.25참전기념관 (2006년 개관, 춘천 소재)
- 이디오피아집 카페 (기념관 인근,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 방한 시 지정)
한국전쟁 참전 16개국의 희생을 기억하고 기리기 위한 공식 기록은 국가보훈부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출처: 국가보훈부 한국전쟁 참전국 현황).
저도 춘천에서 그 기념관 앞을 그냥 지나쳤던 사람입니다. 몰랐기 때문에 그냥 걸어 지나쳤는데, 이제는 다시 그 앞에 서게 된다면 발걸음이 멈춰질 것 같습니다. 아무 연고도 없는 나라의 자유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었던 강뉴부대원들, 그리고 미국, 영국, 캐나다, 튀르키예, 호주, 그리스, 필리핀, 태국, 에티오피아, 네덜란드, 콜롬비아, 뉴질랜드, 벨기에, 프랑스, 남아공, 룩셈부르크 총 16개국 참전용사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올해 6월 25일만큼은 기념관 한 곳이라도 들러보시길 권합니다. 그 걸음이 가장 정직한 감사의 표현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