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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봉쇄와 기름값 (석유 역사, 호르무즈 해협, 에너지 위기)

by 관점의 창 2026. 5. 7.

호르무즈 해협

솔직히 저는 LPG 화물차를 계약하던 날, 기름값이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버지가 택배 일 오래 하셨으니까 그냥 믿고 따라갔는데, 이게 세계 반대편 해협 하나가 막히면서 내 계기판 숫자까지 바꿔버릴 줄은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선언되고 유가가 30% 가까이 치솟으면서, 제 선택이 맞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페르시아만 석유 역사, 왜 영국부터 시작하는가

직접 이 상황을 겪어보니 자꾸 "왜 중동 석유에 이렇게 목을 매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거슬러 올라가보니 결국 영국 이야기부터 시작하게 되더라고요.

20세기 초, 영국의 사업가 윌리엄 녹스 다시는 페르시아 땅을 파기로 합니다. 당시 페르시아를 지배하던 카자르 왕조는 사실상 영국의 보호국이나 다름없는 상태였고, 다시는 고작 4만 파운드에 60년짜리 자원 개발권을 손에 넣었습니다. 1908년 후제스탄 일대에서 마침내 석유가 터졌고, 이렇게 탄생한 회사가 앵글로-페르시안 오일 컴퍼니, 지금의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입니다. 이란은 채굴량의 고작 16% 수수료만 받았습니다.

세계사에서 잘못을 추적하다 보면 영국이 자주 등장한다는 말이 새삼 실감 납니다. 신사의 나라 이미지와는 달리, 이 시기 영국이 남긴 흔적은 오늘의 중동 정세와 아주 선명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1차 대전 이후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면서 이라크에서도 석유가 발견됩니다. 서구의 거대 석유 회사들이 페르시아만 전역을 장악하면서 이른바 조광권(Concession) 계약이 표준이 됩니다. 조광권이란 외국 기업이 특정 구역의 지하자원을 독점적으로 개발하고, 해당 국가는 배럴당 고정 수수료만 받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집주인은 임대료만 받고, 세입자가 집을 마음대로 뜯어 쓰는 구조였습니다.

2차 대전을 거치며 상황이 달라집니다. 석유가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국가 생존 자체와 직결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산유국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1951년 이란 총리 모하마드 모사데크는 석유 시설 국유화를 선언했지만, 영국과 미국이 합작한 에이잭스 작전으로 불과 3년 만에 뒤집혔습니다. 이후 산유국들은 급격한 충돌 대신 점진적인 지분 회수를 택했고, 1960년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결성합니다. OPEC이란 산유국들이 석유 생산량과 가격을 공동으로 조율하기 위해 만든 국제기구로, 초기에는 힘이 미약했지만 1973년 4차 중동 전쟁을 계기로 그 존재감을 전 세계에 각인시킵니다. 이것이 제1차 오일 쇼크로, 유가가 단기간에 4배 가까이 뛰어오른 사건입니다.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제2차 오일 쇼크까지 이어지면서 세계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즉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발생하는 최악의 상황을 경험했습니다.

페르시아만에 석유가 유독 많이 묻힌 이유도 따져보면 지구 역사 2억 년 전으로 거슬러 갑니다. 중생대 판게아 시절, 이 지역 일대에 테티스해라는 거대한 내해가 있었습니다. 수심이 얕고 물 순환이 적어 플랑크톤과 해조류의 사체가 분해되지 않고 쌓였고, 수천만 년의 열과 압력을 받아 석유로 변했습니다. 그 위를 증발암층이 덮어 석유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봉인한 것이 지금의 유전 구조입니다. 오늘날 페르시아만 일대의 석유 매장량은 전 세계의 약 48%에 달합니다(출처: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호르무즈 해협 봉쇄, 계기판 앞에서 실감한 에너지 위기

제가 직접 겪어보니 유가 뉴스가 이렇게 피부에 와닿은 적이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주유소 앞에서 "또 올랐네" 정도로 넘어갔는데, 지금은 배송 한 건 뛸 때마다 머릿속으로 연료비를 계산하고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과 아랍에미리트·오만 사이에 위치한 수로로, 전체 폭은 약 54km이지만 유조선이 실제로 항행할 수 있는 수심을 갖춘 구간은 약 10km 남짓에 불과합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 가항 수로(Navigable Channel), 즉 대형 선박이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는 수심 구간이 이란 쪽 영해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란이 마음만 먹으면 페르시아만 전체 석유 수출의 목줄을 쥘 수 있는 구조입니다.

2026년, 이란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가 사망하면서 이란군이 호르무즈 해협의 전면 봉쇄를 선언했습니다. 봉쇄 선언 직후 국제 유가는 30% 가까이 수직 상승했고, 런던의 해운 보험사들은 전쟁 위험 담보 취소를 통보했습니다. 전쟁 위험 담보란 분쟁 해역을 항행하는 선박에 대한 보험 보장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사라지는 순간 어떤 해운사도 선박을 띄우기 어렵습니다. 3월 초 기준으로 페르시아만에 갇혀 대기 중인 유조선만 약 200척, 하루 원유 물동량은 최대 86%가 감소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가장 타격을 받는 곳이 동아시아입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석유 수입의 절반 이상을 페르시아만에 의존합니다. 그나마 석유는 우리나라가 약 200일분의 전략 비축유(Strategic Petroleum Reserve), 즉 유사시를 대비해 국가가 별도로 보관해두는 석유를 보유하고 있어 단기 충격은 버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천연가스는 다릅니다. 특성상 대량 저장이 어려워 비축량이 한 달치 수준에 불과한데, 우리나라는 천연가스 수입의 절반 이상을 카타르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란의 드론 공격으로 카타르의 가스 생산 자체가 중단되면서 상황이 더 나빠졌습니다. 에너지 수급 취약성에 대한 경고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이렇게 한순간에 현실로 닥칠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나라 정부는 2026년 5월 7일 민생 안정을 이유로 석유 최고가격 동결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행정 통제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는 솔직히 의문입니다. 가격을 눌러도 공급 자체가 줄어드는 구조적 문제는 해결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출처: 산업통상자원부).

지금 이 위기가 우리에게 남기는 구조적 취약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천연가스 비축량이 한 달치 수준으로 석유 대비 현저히 낮습니다.
  • 카타르 단일 국가에 대한 천연가스 수입 의존도가 절반을 넘습니다.
  • 호르무즈 해협 우회 인프라(송유관 등)가 유조선 수송 대비 극히 제한적입니다.
  • 해운 보험 취소 시 민간 기업의 자발적 대응만으로는 공급 유지가 불가능합니다.

아버지와 저, 둘 다 화물차로 먹고사는 입장에서 이 리스트를 보면 머리가 좀 아픕니다. 아버지는 경유차, 저는 LPG차인데 둘 다 연료비 직격탄을 맞은 상황입니다. LPG 가격도 함께 오를 줄은 차를 살 때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전기차를 선택했다면 달랐을까 싶은 아쉬움이 요즘 계기판을 볼 때마다 올라옵니다.

요즘 저는 연비 운전을 의식적으로 하게 됩니다. 가속을 줄이고, 정차 직전 미리 속도를 뺍니다. 큰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조금 놓입니다. 택배는 많이 움직일수록 수입이 늘어나는 구조인데, 기름을 더 쓸수록 실수입이 줄어드는 역설이 점점 피부에 와닿고 있습니다.

결국 이 상황이 빠르게 수습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다만 이번 일을 계기로 에너지 수입 다변화와 비축 인프라 확충이 더 진지하게 논의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건 연비 운전과 불필요한 운행 줄이기 정도겠지만, 국가 차원에서는 이번 위기를 에너지 구조를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 같습니다. 중동 정세가 안정되더라도,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단 하나의 수로에 동아시아 경제 전체가 달려 있는 현실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2eA1LTWi0i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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