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겨울 이사하던 날 아침, 예상 밖의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이사짐센터 직원들이 집 앞에 줄줄이 들어서는데, 들려오는 대화 소리가 낯설었습니다. 러시아어처럼 들렸지만 알고 보니 몽골어였습니다. 그날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몽골 사람들이 이렇게나 가까이 살고 있었구나 하고요.
600년 만에 다시 이어진 한몽관계, 그 배경
사실 한국과 몽골의 관계는 오해로 가득 찬 역사입니다. 형제의 민족이라거나 유전적으로 가깝다는 이야기가 오래 돌았지만, 실제로 한국인의 유전자 풀은 화북 지역 중국인이나 조몬 계통 일본인에 가깝고, 몽골인은 튀르크인이나 시베리아 원주민과 더 친연 관계입니다. 우랄알타이 어족설 역시 20년도 더 전에 학계에서 사실상 폐기된 이론이고요.
오히려 역사적으로 두 지역은 숙적에 가까웠습니다. 13세기 여몽전쟁(麗蒙戰爭)은 약 30년간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고려는 1254년 한 해에만 포로 20만 명 이상이 끌려가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공녀(貢女) 제도를 통해 어린 처녀들이 수천 명 끌려간 것은 물론, 두 차례의 일본 원정에 고려 남성들이 강제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일제강점기보다도 길고 혹독한 수난기였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시기에 고려양(高麗樣)이라는 현상이 생겨납니다. 고려양이란 고려의 복식과 식문화가 원나라 상류층 사이에서 크게 유행한 현상을 말합니다. 원나라 황실에 고려 출신 인물들이 적지 않게 유입되면서 자연스럽게 고려의 문물이 퍼진 것입니다. 침략자의 궁정에서 피침략국의 문화가 유행했다는 점이 역설적이면서도 묘합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단절됐던 양국 관계가 다시 이어진 건 1990년입니다. 동구권 공산주의 블록의 붕괴와 함께 몽골이 다당제(多黨制)를 도입하고 민주화를 이루면서, 600여 년 만에 대한민국과 정식 수교를 맺게 됩니다. 다당제란 두 개 이상의 정당이 경쟁하는 민주주의 정치 구조를 말하는데, 몽골이 이를 자발적으로 채택한 것은 아시아 공산권에서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한국과 몽골이 가까워진 데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 몽골은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완전히 둘러싸인 내륙국으로, 수출입의 90% 가까이가 중국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 역사적으로 청나라에 200년 이상 지배당한 경험 때문에 중국에 대한 반감이 상당히 강합니다.
- 러시아 역시 소련 붕괴 이후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경제 규모와 산업력을 갖추면서도 지리적으로 가까운 제3의 파트너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한국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중국 외 원자재 수입처를 다변화하고 아시아 내륙에 거점을 확보할 필요성이 있었고, 몽골은 석탄·구리·우라늄·희토류·리튬 등 막대한 지하자원을 보유한 나라입니다. 희토류란 첨단 전자기기와 배터리 제조에 필수적인 17종의 금속 원소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전기차와 반도체 산업의 핵심 소재입니다. 이처럼 서로의 필요가 맞물리면서 양국 관계는 1999년 상호 보완적 협력 관계를 시작으로, 2021년 전략적 동반자 관계까지 빠르게 격상됐습니다.
21세기 고려양, 울란바토르에 스민 한국
지금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를 사진으로 보면 처음엔 한국 어딘가의 신도시로 착각합니다. 아파트 단지 구조, 거리 풍경, 간판 디자인까지 낯설지가 않습니다. 키릴 문자(Cyrillic Script)만 아니면 동탄이나 위례 신도시라고 해도 믿을 것 같습니다. 키릴 문자란 러시아어와 몽골어 등 구소련 권역 언어에서 사용하는 문자 체계입니다.
편의점, 화장품 로드샵, 프랜차이즈 카페, 제과점까지 한국 브랜드들이 도시 곳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걸 보고 누군가는 그냥 한류 열풍이라고 가볍게 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좀 다르게 느꼈습니다. 그 이사하던 날 마주쳤던 몽골 직원분들의 모습이 겹쳐 보이면서, 이게 단순한 문화 소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오랜 교류에서 만들어진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실제 수치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현재 한국에 체류 중인 몽골인은 5만 명 이상으로, 전체 몽골 인구 350만 명 대비 약 1.4%에 해당합니다. 한국 생활 경험이 있는 몽골인까지 합치면 약 30만 명, 즉 몽골인 10명 중 1명은 한국을 직접 경험한 셈입니다. 이들이 한국에서 본국으로 송금하는 금액은 연간 약 1조 원 규모로, 한국의 대몽골 전체 수출 대금과 맞먹는 수준입니다(출처: 한국수출입은행).
한류(韓流)의 뿌리도 깊습니다. 몽골은 이미 1990년대부터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유입된 1세대 한류 소비 지역 중 하나로, 현재 한국어학과를 개설한 대학만 11개 이상입니다. 한류란 한국 문화콘텐츠가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 현상을 총칭하는 개념인데, 몽골에서는 드라마나 음악을 넘어 언어 학습과 소비 패턴 전반에 걸쳐 깊이 침투해 있습니다. 몽골에서 한국을 '22번째 아이막'이라고 부른다는 말도 있는데, 아이막이란 몽골의 광역 행정 단위로 한국의 도(道)에 해당합니다. 한국 체류 몽골인의 수가 웬만한 아이막 인구를 넘어선다는 데서 나온 표현입니다.
외교적으로도 양국 관계는 예사롭지 않습니다. 몽골은 한때 북한과 같은 편이었지만, 지금은 탈북자들을 적극 구제해 한국으로 보내주는 나라입니다. 이 과정에서 옛 우방이었던 북한과의 외교 마찰까지 감수하는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재외동포청 통계에 따르면 몽골을 통한 탈북 루트는 오랜 기간 주요 경로 중 하나였습니다(출처: 통일부).
제가 직접 경험한 것처럼, 몽골 사람들은 낯선 환경에서도 묵묵하고 성실하게 일합니다. 그날 이사 현장에서 대형 가구들을 빠르고 능숙하게 처리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한국에서 일하며 번 돈을 고국으로 보내는 그분들이, 어쩌면 지금의 한몽관계를 실질적으로 떠받치고 있는 사람들 아닐까 싶었습니다.
어린 시절 사진 속에서 본 몽골은 광활한 초원과 게르, 자유롭게 달리는 말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 낭만적인 이미지와 지금의 울란바토르 신도시 풍경, 그리고 한국 이사 현장에서 만난 몽골 직원들까지. 한 나라의 얼굴은 이렇게 여러 층위로 쌓여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말이 이렇게 선명하게 느껴질 때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800년 전 고려를 침략했던 나라가 지금은 탈북자를 한국으로 보내주는 나라가 됐습니다. 몽골이 언젠가 자원 개발과 내수 시장이 성장하는 시점이 오면, 한국과의 관계는 지금보다 훨씬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아직 못 가본 몽골 초원, 언젠가 직접 발을 딛게 된다면 그때는 꽤 오래된 인연의 땅을 밟는 기분이 들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