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버워치를 즐겨 하는 분이라면 '하바나' 맵이 익숙하실 겁니다. 저도 그 맵을 수백 번은 돌았으면서, 하바나가 쿠바의 수도라는 사실을 이번에야 처음 알았습니다. 시가, 야구, 카밀라 카베요의 노래 '하바나' 정도가 제가 아는 전부였는데, 실제 하바나의 현실은 그 어떤 게임 맵보다 낯선 세계였습니다.
60년 넘게 이어진 경제봉쇄, 지금 쿠바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1959년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혁명 이후, 미국은 쿠바와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고 포괄적인 경제봉쇄(Embargo)를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경제봉쇄란 특정 국가와의 무역·금융 거래를 전면 차단하는 외교적 압박 수단으로, 단순한 관세 장벽과는 차원이 다른 조치입니다. 쿠바는 미국산 제품을 수입할 수 없고, 달러화 결제도 사실상 막혀 있으며, 제3국 기업들조차 쿠바와 거래하면 미국 시장에서 퇴출당할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이 봉쇄가 어느덧 65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그 무게를 실감하기 어려운 숫자입니다. 1962년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려다 미국과 정면충돌했던 쿠바 미사일 위기(Cuban Missile Crisis)를 거치면서, 쿠바는 미국에게 단순한 외교 문제가 아닌 안보 문제로 각인됐습니다. 그 냉전의 유산이 2025년에도 현실을 옥죄고 있는 겁니다.
최근 미국 백악관은 추가 제재를 발표하면서, 쿠바가 이란 등 테러 지원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쿠바를 끊임없이 언급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죠. 봉쇄가 끝나기는커녕 더 촘촘해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연료난이 뒤흔든 하바나의 일상
하바나의 거리는 텅 비어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올드 카들이 넘쳐나던 광장에, 지금은 마차가 주요 교통수단으로 다닙니다. 연료가 없기 때문입니다.
쿠바는 오랫동안 베네수엘라로부터 원유를 지원받아 왔습니다. 베네수엘라가 하루 수만 배럴의 원유를 우호 가격에 공급하는 구조였는데, 베네수엘라 자체의 경제 위기로 이 공급이 급감하면서 쿠바 에너지 인프라 전체가 흔들렸습니다. 쿠바의 발전소 대부분은 중유(重油) 기반 화력발전에 의존합니다. 여기서 중유 기반 화력발전이란 원유를 정제하고 남은 잔사유를 태워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연료 공급이 끊기면 발전 자체가 멈춘다는 구조적 취약점을 가집니다.
그 결과가 일상적인 대규모 정전입니다. 어떤 지역은 전기가 새벽 5시에 들어왔다가 7시면 다시 끊깁니다. 주유소 사정은 더 처참합니다. 국영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으려면 '티켓'이라는 앱으로 대기자 명단에 등록해야 하는데, 무려 14,000명이 넘는 대기자 중에 2,000번대 번호를 기다리는 분도 있었습니다. 3개월째 기다리는 중이라고요. 결국 사람들은 암시장(Black Market)으로 갑니다. 암시장이란 정부가 통제하는 공식 유통 채널 밖에서 이루어지는 불법 거래를 뜻하는데, 쿠바에서는 이미 연료와 달러 환전, 생필품 거래까지 암시장이 사실상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쿠바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약 9,500달러 수준으로 추정되지만(출처: World Bank), 정부가 공식적으로 지급하는 월급은 5,000페소, 달러로 환산하면 10달러 안팎입니다. 의사도, 교사도, 택시 기사도 월 10달러를 받습니다. 이 금액으로 달러 결제 슈퍼마켓에서는 아무것도 살 수 없습니다.
배급제와 두 개의 시장, 분리된 쿠바의 경제구조
쿠바에는 두 개의 경제가 평행하게 존재합니다. 하나는 쿠바 페소로 돌아가는 서민 경제이고, 다른 하나는 달러와 외화로 돌아가는 부유층 경제입니다.
서민들은 리브레타(Libreta)라는 배급 수첩에 의존합니다. 리브레타란 쿠바 정부가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식량 배급 카드로, 쌀·콩·설탕·기름·소금·커피 같은 기본 품목을 월별로 할당하는 제도입니다. 1962년부터 시작된 이 제도는 60년이 넘도록 유지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배급소 자체가 텅 비어 있는 날이 많다는 겁니다. 빵 한 덩이 사려고 3시간씩 줄을 서는 것이 일상입니다.
반대편에는 달러 결제 슈퍼마켓이 있습니다. 선반은 가득 차 있고 베네수엘라산, 베트남산, 스페인산, 브라질산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봉쇄로 미국 제품은 없지만, 제3국 물건들은 들어옵니다. 단, 전부 달러로 결제해야 합니다. 해외에 나간 가족이나 친구가 달러를 송금해주지 않으면 이 시장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쿠바 가계의 실질 구매력 격차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핵심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국영 주유소: 앱으로 대기 등록, 수개월 대기 후 소량 수령
- 달러 주유소: 즉시 이용 가능, 국제 시세 수준의 가격
- 국영 슈퍼마켓: 리브레타 배급, 재고 부족 상시화
- 달러 슈퍼마켓: 풍부한 재고, 달러 결제 필수
- 암시장: 연료·외화·생필품 불법 유통, 공식 환율의 10배 이상 암거래 환율 적용
이 이중 구조(Dual Economy)는 같은 나라 안에서 사실상 계층에 따라 다른 나라를 사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이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공산주의 체제라면 평등한 분배를 기본으로 한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오히려 빈부 격차가 외화 보유 여부에 따라 극단적으로 갈리는 구조였습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쿠바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삶을 이어갑니다. 1951년식 자동차를 직접 부품을 만들어가며 굴리고, 전기가 없으면 장작으로 요리하고, 물이 15일에 한 번 나오면 탱크에 저장해 씁니다. 영화관에서 20분쯤 보다가 갑자기 정전이 되어 상영이 끊겨도, 환불 없이 집으로 돌아갑니다. 오래된 건물이 무너지면 정부가 체육관에 임시 주거 공간을 만들어 열네 가구를 수용하고, 그 사람들은 체육관 안에서 침대를 놓고 생활합니다.
현재 쿠바의 인구는 약 1,100만 명이며, 최근 몇 년간 이민자 수가 급증하면서 실질 인구가 빠르게 줄고 있습니다(출처: 쿠바 국립통계청 ONEI). 이웃이나 친구 중 거의 대부분이 쿠바를 떠나고 싶어 한다는 말이 허언이 아닌 셈입니다.
이 모든 걸 알고 나니, 제가 사는 환경이 다시 보였습니다. 저는 24시간 전기가 들어오는 집에서 오버워치 '하바나' 맵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실제 하바나에서는 전기가 하루 두 시간도 채 안 들어오는 날이 있는데 말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 자유로운 인터넷, 마트에서 원하는 걸 살 수 있는 일상이 어떤 역사적 과정과 어떤 선택들을 통해 만들어진 건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무거운 문제라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쉽게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요.
쿠바가 냉전의 유물로 그대로 굳어버릴지, 아니면 어떤 변화가 시작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변화의 방향과 속도는, 쿠바 내부만큼이나 미국의 정책 선택에 달려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당분간은 그 지각변동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