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이 끝나면 기름값도 제자리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셨습니까? 저도 한때는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 믿음이 얼마나 순진한 기대였는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 이후 저는 매일 주유기 앞에 서면서 그 숫자가 주는 무게가 예전과 달라졌다는 걸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오일쇼크가 바꿔온 세상, 그리고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
1973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인류는 다섯 번의 오일쇼크를 겪었습니다. 원인은 매번 달랐지만 결과는 놀랄 만큼 비슷한 순서로 전개되었습니다. 운송비 상승이 먼저 오고, 그 다음에 전방위 물가 상승이 따라붙으며, 이를 잡으려는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이 뒤를 잇습니다.
1979년 2차 오일쇼크 당시 미 연준 의장 폴 볼커는 기준금리를 20%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볼커 쇼크입니다. 볼커 쇼크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극단적으로 높여 경기 자체를 강제로 식혀버리는 정책을 의미합니다. 그 결과 한국을 포함한 신흥 공업국들은 마이너스 성장을 겪었고, 수많은 기업이 도산했습니다.
2008년 4차 오일쇼크 때는 유가가 배럴당 147달러라는 사상 최고치를 찍었습니다. 이 시기에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다시 전 세계를 덮쳤습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이란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발생하는 상태로, 금리를 올리면 경기가 더 나빠지고 그렇다고 가만히 두면 물가가 치솟는 딜레마 상황을 말합니다. 교과서적으로 가장 다루기 어려운 경제 위기 유형입니다.
오일쇼크가 반복되면서 각국은 전략비축유(SPR, Strategic Petroleum Reserve)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전략비축유란 유가 급등이나 공급 차단 사태에 대비해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비상용 석유 비축량을 말합니다. 3차 오일쇼크 당시 이라크가 쿠웨이트 유전에 불을 지른 이후 에너지를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국가 생존 자원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결과물이었습니다.
다섯 번의 오일쇼크에서 공통적으로 반복된 흐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1단계: 유류할증료 급등과 물류 지연
- 2단계: 식료품·공산품·전기세 등 전방위 물가 상승
- 3단계: 중앙은행 기준금리 급격한 인상
- 4단계: 소비 위축과 기업 구조조정, 고용 불안
- 5단계: 소형차·근거리 소비 등 생활 방식의 구조적 변화
- 6단계: 에너지 고효율 산업이 새로운 승자로 부상하며 산업 재편
저는 이 흐름을 머릿속으로만 이해했을 때와 지금 몸으로 겪고 있을 때의 온도 차이가 너무 다르다는 걸 실감하고 있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이번 전쟁으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석유 공급 차질이 발생했으며, 유사한 수준의 공급망 훼손은 과거에도 정상화까지 최소 2년이 소요되었습니다(출처: 국제에너지기구).
한국의 조용한 위기, 그리고 택배기사인 내가 느끼는 무게
세계가 비명을 질러도 한국은 지금 겉보기에 평온합니다. 주유소 앞에 긴 줄도 없고 사재기도 없습니다. 이것은 한국 정부가 유류세 탄력 세율 제도를 운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류세 탄력 세율이란 국제 유가가 급등할 때 정부가 세금 비중을 일시적으로 낮춰 소비자 가격 상승폭을 강제로 억제하는 제도를 뜻합니다. 실제로 우리가 주유소에서 내는 돈의 절반 가까이가 세금인데, 이 세금을 정부가 역대급으로 낮춰 충격을 완충하고 있는 겁니다.
한국전력과 가스공사 같은 에너지 공기업들도 부채를 직접 짊어지며 가격 인상을 막고 있습니다. 결국 지금 가격이 안 오른 것이 아니라, 그 폭탄을 정부와 공기업이 미래로 미루어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체감하는 현실은 조금 다릅니다. 저는 아버지, 어머니와 셋이서 택배 일을 합니다.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트럭을 몰고 나가는 생활입니다. 주유기 앞에 설 때마다 고된 하루의 노동이 기름값으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세금 덕분에 숫자가 덜 오른 것은 압니다. 하지만 그 숫자가 주는 무게가 예전보다 훨씬 무거워졌다는 건 도로 위에서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라면 다들 느끼고 있을 겁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오일쇼크를 역사 속 사건으로만 알고 있을 때는 이렇게 일상 깊숙이 파고든다는 감각이 없었습니다. 만약 6차 오일쇼크가 본격화된다면 택배 운임 구조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생각이 요즘 들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걱정되는 것이 있습니다. 여름이 오면 저는 에어컨을 켭니다. 더위를 정말 싫어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최대한 틀어놓는 편입니다. 그런데 전기는 화석연료로 만들어집니다. 유가가 오르면 전기 요금도 오르고, 그렇게 되면 에어컨을 켜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워질 수 있다는 걸 이번에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한국은 특히 이 구조에서 취약합니다. 우리나라는 주변국과 전력망이 연결되지 않은 사실상의 전기 섬입니다. 반도체 공장 하나를 가동하는 데 드는 전력량은 웬만한 도시 전체가 쓰는 양에 맞먹습니다. 이런 구조에서 에너지 비용이 폭등하면 단순히 전기세 부담을 넘어 국가 수출 경쟁력 자체가 흔들리는 문제가 됩니다. 한국전력공사 경영 공시에 따르면 한국전력은 이미 수십 조원 규모의 누적 적자를 안고 있는 상태로, 공공요금 인상을 무한정 억제하기엔 구조적 한계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전력공사).
제가 놀란 것은 여기서 하나 더 있습니다. 전쟁이 끝나도 곧바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파괴된 유전 설비와 정제 시설을 복구하는 데는 막대한 자본과 기술,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물론,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정유 고도화 설비를 갖춰낸 것을 보면 산업화 세대의 집요함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그분들이 없었다면 지금 이 완충 능력조차 없었을 테니까요.
역사를 복기하며 한 가지는 분명해졌습니다. 오일쇼크는 늘 낡은 것을 밀어내고 새로운 질서를 세웠습니다. 1차 때 암스테르담이 자전거 도시로 바뀌었고, 2차 때 일본 소형차가 미국 대형차를 밀어냈으며, 4차 때 셰일오일 혁명이 시작됐습니다. 위기가 변화를 강제했고, 그 변화를 먼저 읽은 쪽이 다음 시대의 승자가 됐습니다. 이번 6차 위기도 그 궤도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 도로 위에서 기름값을 온몸으로 맞고 있는 입장에서, 이 위기가 하루라도 빨리 수습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투자 조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