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얼마 전까지 이란과 아랍을 같은 민족으로 생각했습니다. 둘 다 중동이고, 둘 다 이슬람이고, 같은 문자를 쓴다는 이유로 그냥 뭉뚱그려 이해했던 거죠. 그런데 이란인에게 "아랍분이시죠?"라고 한 마디 건넸다가 표정이 얼어붙었다는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야 제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 호주 워킹홀리데이 때 호스텔에서 독일 친구가 저를 보며 "China?"라고 물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아시아인 = 중국인? 그 오해가 내게도 있었다
호주 브리즈번의 한 호스텔에서 짐을 풀던 날이었습니다. 독일에서 온 친구와 스몰톡을 나누다가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China?"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순간 멈칫했지만 크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외형이 비슷하고, 그쪽 입장에서는 아시아인 하면 중국인이 가장 먼저 떠오를 수 있겠다 싶었거든요. 솔직히 저도 아랍과 이란을 그런 식으로 뭉뚱그려 봐왔으니까요.
그런데 이란인이 같은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은 제가 느낀 것과 차원이 다릅니다. 이란인들은 아랍인으로 오해받는 것을 단순한 외형 혼동이 아니라, 수천 년 페르시아 문명의 정체성을 통째로 부정당하는 일로 받아들입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려면 둘이 유전적으로, 언어적으로 얼마나 다른지부터 짚어봐야 합니다.
이란인은 인도유럽어족(Indo-European language family)에 속하는 아리아인 계통입니다. 여기서 인도유럽어족이란 유럽 대부분의 언어와 인도 북부 언어를 아우르는 거대한 언어 집단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이란인은 언어적으로 영어나 힌디어 사용자들과 더 가깝습니다. 반면 아랍인은 아프리카아시아어족(Afroasiatic language family)의 셈족 계통으로, 히브리어를 쓰는 유대인과 같은 뿌리입니다.
둘의 언어 차이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문법 구조입니다.
- 페르시아어: 주어 - 목적어 - 동사 순서 (한국어와 유사)
- 아랍어: 동사 - 주어 - 목적어 순서 (완전히 다른 어순)
- 문법적 성별: 페르시아어는 없음, 아랍어는 남성형·여성형 엄격 구분
- 사용 문자: 둘 다 아랍 문자 기반이나, 페르시아어는 아랍어 28자에 4자를 추가한 32자 사용
같은 문자를 쓰는 이유는 7세기 아랍의 페르시아 정복 이후 문자를 차용했기 때문이며, 이는 한자 문화권 국가들이 한자를 공유하면서도 전혀 다른 언어를 쓰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정복당한 문명이 남긴 상처와 종파 갈등
제가 역사를 공부하면서 가장 충격적으로 느낀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Achaemenid Empire)는 인더스강에서 나일강까지를 지배하는 거대 제국이었습니다. 여기서 아케메네스 왕조란 키루스 대왕이 세운 고대 페르시아 최초의 통일 왕조로, 역사상 처음으로 다민족 관용 정책을 체계적으로 실시한 제국입니다. 그 무렵 아라비아 반도의 아랍인들은 룹알할리(Rub' al Khali), 즉 세계 최대의 모래 사막에서 베두인 유목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랬던 아랍이 서기 7세기 이슬람이라는 새로운 종교로 단결하더니 불과 15년 만에 페르시아 제국을 무너뜨렸습니다. 이란인이 낮잡아 보던 상대에게 정복당한 것이죠. 이 사건이 이란 민족 정체성에 남긴 상처는 지금까지도 아물지 않았습니다.
흥미롭게도 이란인들은 이슬람 종교 자체는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당시 페르시아의 전통 종교인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 성직자 계층의 부패와 권력 독점이 심각했던 탓에 평등을 강조하는 이슬람이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합니다. 여기서 조로아스터교란 기원전 6세기경 예언자 조로아스터가 창시한 고대 이란의 유일신 종교로, 선악의 대립과 최후의 심판 개념이 이슬람·기독교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는 받아들였어도 아랍 지배 체제 아래서 이란인들은 2등 시민으로 분류됐습니다. 더 많은 세금을 냈고 군사적으로도 낮은 서열에 배치됐죠. 결국 8~10세기에 걸쳐 슈우비야(Shu'ubiyya) 운동이 벌어집니다. 슈우비야란 아랍 문화의 우월성에 저항하며 페르시아 문화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주장한 대규모 지식인 저항 운동입니다. 이란 지식인들의 핵심 논리는 간결했습니다. "우리는 이슬람을 받아들였지만, 아랍인이 된 적은 없다."
이 갈등이 종교적으로 굳어진 계기가 바로 수니파(Sunni)와 시아파(Shia)의 분열입니다. 저는 이슬람도 불교나 기독교처럼 하나의 단일 종교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내부 종파 갈등이 천 년 넘게 이어진다는 사실이 상당히 놀라웠습니다. 632년 선지자 무함마드 사망 이후 후계자 문제를 두고 공동체 합의를 중시하는 수니파와 무함마드 혈통만이 정당하다고 보는 시아파가 갈라졌습니다. 1501년 이란에 세워진 사파비 왕조(Safavid dynasty)가 시아파를 국교로 강제 선포하면서 이란 전역의 종파 지형이 바뀌었고, 현재 이란 무슬림의 89%가 시아파인 것은 이 강제 개종의 역사적 결과입니다(출처: CIA World Factbook).
천 년 묵은 갈등이 지금 유가를 흔드는 이유
이 모든 역사가 지금 우리 지갑과 연결된다는 게 처음엔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직접 투자를 해보고 나서야 중동 뉴스 하나하나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이란-아랍 갈등이 재점화될 때마다 유가가 출렁이고, 그게 고스란히 제 투자 수익률에 반영되더군요.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Iranian Islamic Revolution)은 중동 판도를 뒤흔든 결정적 사건이었습니다. 여기서 이슬람 혁명이란 팔라비 왕조의 친서구 노선에 반대한 민중 봉기로, 시아파 신정 국가가 탄생한 사건을 말합니다. 이 혁명 이후 이란은 '혁명 수출'을 공식 노선으로 삼았고, GCC(Gulf Cooperation Council) 아랍 왕정들은 극도로 긴장했습니다. GCC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카타르, 바레인, 오만 6개국이 참여하는 걸프 협력회의로, 1981년 이란 봉쇄를 실질적 목적으로 창설된 집단 안보 체제입니다(출처: GCC 공식 사이트).
이란이 레바논 헤즈볼라, 예멘 후티 반군,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에 연간 수억 달러를 지원하는 것도 이 맥락에서 봐야 합니다. 시아파 초승달 지대(Shia Crescent)라는 개념이 여기서 나옵니다. 시아파 초승달 지대란 이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을 잇는 시아파 세력권 벨트로, 아랍 수니파 왕정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지정학적 구도입니다.
경제적으로도 구도는 명확합니다. GCC 6개국 GDP 합산과 비교했을 때 이란의 GDP는 그 일부에 불과하고, 미국의 경제 제재까지 겹쳐 이란 경제는 극심한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란이 보유한 9,300만 명의 인구와 단일 국가로서 집중된 군사력은 여전히 중동 패권 경쟁에서 무시하기 어려운 변수입니다.
이 구도를 이해하고 나면 뉴스에서 중동 관련 소식이 나올 때마다 예전과 다르게 보입니다. 민족, 언어, 문명, 종파까지 켜켜이 쌓인 갈등이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그 동네 또 싸우네" 한 마디로 넘기기 어렵더군요.
이란과 아랍의 갈등은 어느 한쪽의 잘못이 아닌 수천 년의 역사적 축적입니다. 우리가 아랍과 이란을 구분하지 못하듯, 그들도 처음부터 하나였던 적이 없었습니다. 앞으로 중동 뉴스를 접할 때 수니파와 시아파, 페르시아와 아랍이라는 두 축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읽는 시야가 꽤 달라질 것입니다.